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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s diary

Helen's diary #1 (2022.12.14.수)

by sweethelen 2022. 12. 15.

오늘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가진 나의 일상을 글로 적어보려 한다. 

제목은 일기이지만, 단편적 삽화들을 모아놓은 글이기도 하다. 

 

어느 새부터 사람과의 대면도 잘하지 않으려는 습관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말도 잘하지 않게 되고, 글도 당연히 쓸 일이 별로 없어

점점 언어적으로 퇴화되는 듯하여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으실 심신이 건강하신 분들은 

주변에 우울증과 공황을 겪는 분이 계시다면

그저 '이런 생각, 이런 증상'을 겪고 있을 그분들을 떠올리며 읽어주시길.

나와 같이 우울증이나 공황을 겪는 분들이라면

'아, 나와는 다른 증상을 겪는 사람도 있구나.' 또는

'아, 나랑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길..

 

 

 

#1 
2022.12.14 수 11p.m.
 
오늘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유성우가 내린다기에
남편과 유성우를 보러 나갔었다. 
하늘과 땅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나란히 걷다가 
문득 한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똥별 하나가 굉장히 찰나의 순간에 내 눈앞을 스쳐갔다.

 

상기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방금 별똥별 봤어!"
남편은 못 봤다며 "자기가 잘못본거 아닐까?"라고 했다.

내가 방금 분명히 봤는데....

 

진짜 고귀한 것들은 정말 너무 찰나이구나..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수 있겠구나...
그렇다고 그 사람이 틀린 건 아닐지도 몰라.
그 사람은 못 본 자신의 눈을 믿은 것일 뿐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게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일까? 생각했다. 

 

나같이 꿈에 젖어 사는 사람만 언제 떨어질지 모를 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게 내가 우울한 원인일지도 몰라...


#2
조금 더 걷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하고는
계속 하늘을 보며 걸었다.

 

아래로 둥근달을 보며 신기해하다가
순간 다시 한번 떨어지는 유성을 남편과 함께 목격했다.

 

이번엔 남편이 먼저 소리쳤다. 

"어?!" 
신기해하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봤지?! 예쁘지?!"
남편이 대답했다. "응"

 

나는 옳다구나 동조를 바라며 물었다.
"그럼 우리 좀 더 지켜보다 갈까?"
남편이 대답했다. 

"아니. 너무 추워. 언제 나타날 줄 알고."

(나는, 나에게 아름답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답고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버리지 못하고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선물하는 어린아이처럼..)

하지만 그는 내가 혼자 말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동안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어디선가 나타날 유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그의 마음씨라면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유성을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춥겠다. 들어갈까?"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럴까? 가면서 여보가 좋아하는 초코우유 사 가지고 들어가자." 

 


#3
얼마 전 <알쓸인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
한 천문학자가 성능이 매우 좋은 우주 카메라를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곳을 한번 찍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그 빈 공간에는
수백 개의 은하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수백 개의 은하중 한 개를 골라 들여다보면 
또 그 안에 수많은 은하가 있었다고 한다.

 

그 넓은 미지의 공간인 우주에서 
렌즈에 담길 만큼의 한 지점만을 골라 보아도
엄청난 별이 존재하는데, 

 

심지어 우리는 태양계라는 은하의 한 개일뿐인 지구에 사는, 80억 인구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럼 우리는 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우리가 미지의 우주를 다 관찰할 수 없고 방문할 수 없기에
지구 밖에 다른 생명체가 사는 건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우주가 너무 광활해서 다른 별에 사는 생명체도
자신들이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